계약을 체결하면서 상대방 회사의 정관까지 굳이 확인해야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표이사의 대표권은 법률 · 정관 · 이사회규칙 · 이사회결의 등에 의하여 제한을 받을 수 있으며, 실무상 다액의 자금도입, 보증행위, 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회사자산의 매각 등과 같은 ‘중요한 행위’는 대표이사가 단독으로 하지 못하고 이사회 결의를 거치도록 정관에 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만약 이러한 대표권 제한이 있는 대표이사와 계약을 체결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판례는 일단 유효하며, 만약에 상대방 회사의 이사회 결의가 없었음을 알았거나(“상대방 대표이사의 대표권 제한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 법률상 ‘악의’라고 표현함) 중대한 과실이 있었을 경우(“상대방 대표이사의 대표권 제한이 있다는 것을 나의 중대한 과실로 몰랐다”)에는 무효라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계약을 체결할 때 상대방 회사의 정관까지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으므로 대표권 제한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법률상 ‘선의’라고 표현함) 계약이 무효로 되는 경우는 드물 겁니다. 그래서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지만 계약 체결시 그 내용이 다액의 자금도입, 보증행위, 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회사자산의 매각 등과 같은 중요한 계약일 경우에는 나중에 무효로 될 경우를 대비하여 상대방 회사의 정관까지 한번 확인해봐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의문을 한번 품어봄으로써 계약을 다시한번 신중하게 생각하고 체결하는 게 좋습니다. 필요하면, 상대방 회사에게 정관을 보여달라고 요구하시는 게 좋을 것입니다.
한가지 유의해야 할 것은 민법상 비영리법인의 이사의 경우(민법 제60조 참조)에는 대표권 제한을 법인등기부에 등기하게 되어 있으므로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민법상 비영리법인의 대표권 제한이 있는 대표이사와 계약을 체결할 경우에는 나중에 상대방 회사가 이를 이유로 계약을 무효로 돌릴 수 있으므로 법인등기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그러나 상법상 주식회사 대표이사의 대표권 제한은 등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므로 대표권 제한을 알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선의’일 것이므로 대표권 제한이 있는 대표이사와 계약을 체결해도 악의가 있거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이상 유효합니다. 아래의 판례는 이에 대한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례인데, 전공자가 아니면 조금 어려울 수 있으나 한번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참조판례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는 대외적으로는 회사를 대표하고 대내적으로는 회사의 업무를 집행할 권한을 가진다. 대표이사는 회사의 행위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행위 자체를 하는 회사의 기관이다. 회사는 주주총회나 이사회 등 의사결정기관을 통해 결정한 의사를 대표이사를 통해 실현하며, 대표이사의 행위는 곧 회사의 행위가 된다. 상법은 대표이사의 대표권 제한에 대하여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정하고 있다(상법 제389조 제3항, 제209조 제2항).
대표권이 제한된 경우에 대표이사는 그 범위에서만 대표권을 갖는다. 그러나 그러한 제한을 위반한 행위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회사의 권리능력을 벗어난 것이 아니라면 대표권의 제한을 알지 못하는 제3자는 그 행위를 회사의 대표행위라고 믿는 것이 당연하고 이러한 신뢰는 보호되어야 한다.
일정한 대외적 거래행위에 관하여 이사회 결의를 거치도록 대표이사의 권한을 제한한 경우에도 이사회 결의는 회사의 내부적 의사결정절차에 불과하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거래 상대방으로서는 회사의 대표자가 거래에 필요한 회사의 내부절차를 마쳤을 것으로 신뢰하였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에 부합한다. 따라서 회사 정관이나 이사회 규정 등에서 이사회 결의를 거치도록 대표이사의 대표권을 제한한 경우(이하 ‘내부적 제한’이라 한다)에도 선의의 제3자는 상법 제209조 제2항에 따라 보호된다.
거래행위의 상대방인 제3자가 상법 제209조 제2항에 따라 보호받기 위하여 선의 이외에 무과실까지 필요하지는 않지만,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제3자의 신뢰를 보호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보아 거래행위가 무효라고 해석함이 타당하다. 중과실이란 제3자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이사회 결의가 없음을 알 수 있었는데도 만연히 이사회 결의가 있었다고 믿음으로써 거래통념상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현저히 위반하는 것으로, 거의 고의에 가까운 정도로 주의를 게을리하여 공평의 관점에서 제3자를 구태여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볼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제3자에게 중과실이 있는지는 이사회 결의가 없다는 점에 대한 제3자의 인식가능성, 회사와 거래한 제3자의 경험과 지위, 회사와 제3자의 종래 거래관계, 대표이사가 한 거래행위가 경험칙상 이례에 속하는 것인지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그러나 제3자가 회사 대표이사와 거래행위를 하면서 회사의 이사회 결의가 없었다고 의심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일반적으로 이사회 결의가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의무까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대법원 2021. 2. 18. 선고 2015다45451 전원합의체판결)